눈 덮인 山野
적진 후방 800리의 혈투를 감행한 작전참모의 자전수기
목차
제1부 조국 해방과 6.25
제2부 백골병단 창설
제3부 적 인민군 중장의 생포
제4부 단목령(박달재)의 비극
제5부 감격의 개선
제6부 미8군 예하 부대로
제7부 사람잡는 C.I.C.
제8부 그 뒷날의 그들
제9부 白骨兵團전적비
제10부 옛격전지를 찾아서!!
제11부 특별법으로 명예회복
제12부 참전 59년만에 영광의 전역
제13부 61년만에 무공훈장
편찬후기
머리말
필자는 63년 전인 1951년 1월부터 그해 4월까지 사이에 중동부전선(中東部戰線)인 강원도 영월군ㆍ읍에서 적 후방에 침투하여 정선, 평창, 대관령, 명주군, 인제, 양양 등 오대ㆍ설악산맥을 넘나들며 영하 20도 내지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기에 이(2)주일 분의 미숫가루만으로 60여일간 혈투를 감행한 노병(老兵)입니다.
이제 필자의 나이도 86이니 미수(米壽)를 몇 해 남기지 않은 늙은이입니다. 내 나이 22살 때인 1950년 북한 괴뢰집단의 두목(頭目) 김일성이 벌인 남침전쟁(南侵戰爭)으로 1950년 대학 정경학부 정치과에서 농촌운동의 기수(旗手)가 되겠다고 공부하던 청년이 책을 버리고 총을 잡아야 했으니 방향(方向)이 바뀌어도 여간 큰 변동이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1951년 1월 3일 육군보충대에서 6~7,000명의 대기 장정(壯丁) 중에서 차출된 나는 육군정보학교에서 소정의 훈련을 이수하고 육군임시대위로 임관과 동시에 육군본부 직할 결사 제11연대 작전참모로 피명(被命)되어,
그해 1월 30일 적 후방,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산야(山野)에 침투하여 4월까지 적진 배후 320km, 우리 릿수로 800리를 태백산맥을 시작으로 심산준령(深山峻嶺)을 벗삼아 눈(雪)을 집어먹으면서 격전을 벌려,
적 인민군 중장(中將)과 대좌(大佐) 등을 포함한 309명을 생포하는 등, 전과를 올린 결사대의 작전참모로 많은 전공을 세웠으나,
임시군인은 군적(軍籍)이 없다면서 군 복무사실을 인정하지 않아 또 다시 휴전 전후에 걸쳐 군복무(軍服務)를 해야 했고,
1961년 8월 이후 명예회복을 위해 정부 당국에 탄원, 진정, 소원 등 300여 통을 제출한 끝에 2004년 3월에 이르러 50여년 만에 겨우 특별법을 제정하여 참전 당시의 계급과 적 후방에서 작전 중 받지 못한 계급별 봉급을 받는 등 명예회복을 하였습니다.
이 어찌 조용히 다가온 영광이겠습니까?
그동안 필자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1961년 8월부터 현재까지 50여년간을 명예를 찾으려 고군분투(孤軍奮鬪) 했습니다.
그 결과 2010년 6월 25일에 이르러서는 참전 59년 만에 육군본부 넓은광장(계룡대연병장)에서, 역사적인 전역식을 거행하는 큰 대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동안 섭섭했던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외로웠던 일,
배신당한 일 등 모두를 잊고 서로 안부(安否)나 물으면서 생(生)을 마감하고자 마지막 남기고 싶은것 들을 숨김없이 모두를 여기에 담아 녹아 내리게 하고자 생각 했습니다.
육십삼(63)년이란 오랜 세월 동안 욕망(欲望)을 간직한 채 망령(妄靈)된 글을 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아니합니다.
그동안 참전 관련 전기(傳記)도 자그마치 31권이나 썼으니 이제 무엇을 더 보태고, 뺄 것이 있겠습니까? 다만, 여기에 기술한 전기(戰記) 중 섭섭한 점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관노(寬怒)해 주심을 바랄뿐입니다.
참전전우 중 눈 덮인 山野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360전몰 전우의 명복(冥福)을 빌고, 살아남은 참전전우와 가족 여러분께도 신의 가호(加護)가 함께하시고 평안(平安)과 강녕(康寧)을 빌며 머리말에 가름합니다.
옛날의 작전참모 ; (파랑새) 全 仁 植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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